나의 중학교 시절 도덕성을 담당하셨던 도덕 선생님 한 분이 계신다.

지금도 내 동생을 가르치고 있는 이 선생님은 예전에 자신이 가르쳤던 학생 이야기를 한번 하신 적이 있다.
어떤 학생이 조퇴를 하겠다고 찾아와 이유를 물어보니, "마음이 아파서요" 라고 했다는 것이다. 당황스럽지만 앞으로는 조퇴를 하지 않겠다는 학생의 말을 믿고 일단 조퇴를 시켜주고 나니 정말로 그 날 이후로는 조퇴하는 일 없이 학교를 잘 다녔다는 훈훈한 결말이다.
다소 허무하지만 3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씩 떠오르는 이야기이다. 그 학생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길래 조퇴를 하면서 두통이나 감기, 복통 따위가 아니라 '마음이 아프다' 라는 이유를 댔을까. 본인의 마음 아픔에 대해 얼마나 자신이 있었길래 어쭙잖은 꾀병 따위로 넘어가지 않고 선생님을 정공법으로 상대했을까.
정말로 구체적인 마음이 아픈 일, 예컨대 실연 등을 에둘러 말한 것일 수도 있고 요즈음의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막연한 답답함이 한계에 이르렀을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감히 그 깊이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버킷리스트에 '마음이 아프다' 라는 사유를 대고 조퇴하기를 추가했다. 그러나 그 정도로 마음이 아픈 적이 있었던가는 차치해도, 이를 실행하기 가장 적절한 시기였던 중학교 3학년 말에는 학교생활이 너무 재밌어서 조퇴를 할 일이 없었고, 고등학교에 온 지금에는 출결을 깔끔하게 관리하기 위해 조퇴를 의도적으로 지양하는 중이다.
물론 출결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지는 3학년 2학기 즈음에 마음 아픔을 사유로 조퇴를 도전해볼 의향은 있었으나, 이는 정말로 마음이 아팠을 그 학생에게 실례일 것이라는 생각에 이내 접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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