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억 년 하고도 몇 년 더

2025. 10. 18. 01:59·사색/고찰과 단상

최근 인스타에서 이런 밈을 봤다.

방문객: 이 티라노사우르스는 화석은 얼마나 오래됐나요?
가이드: 70,000,006년이요.
방문객: 와,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아세요?
가이드: 제가 여기서 일을 시작했을 때 70,000,000년 전 화석이라고 들었거든요.

 

유머에 해설을 덧붙이는 것은 정말 해서는 안 될 행동 중 하나지만, 오늘의 주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굳이 해설을 해 보도록 하겠다. 우리가 '대략' 7천만 년 지났다고 말하는 티라노사우르스 화석을 정말 문자 그대로 정확히 70,000,000년이 지났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매년 1년씩 더하던 가이드의 행동이 이 유머의 웃음 포인트이다.

 

물론 유머는 유머일 뿐이고, 우리는 가이드가 한 말의 논리적인 문제점을 바로 알 수 있다. 우리가 7천만 년 전의 화석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이 정확히 70,000,000년 전의 화석인지, 69,999,999년 전의 화석인지 알 수 없기에 어느 정도의 오차범위를 상정하여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의 자릿수에 디테일이 들어가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하지만 얼핏 엉뚱하게만 들리는 가이드의 말에는 보다 심오한 생각의 여지가 남아있다. 저 티라노사우르스의 나이는 언제부터 바뀔 수 있을까?

 

만약 지금으로부터 1천만 년이 더 흐른다면 우리는 저 화석을 확실히 8천만 년 되었다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천만까지 갈 필요도 없이, 1백만 년만 더 흘러도 우리는 저 화석을 7100만 년 되었다고 할 수 있을 테다. 그렇다면 10만 년, 1만 년.... 자릿수를 조금씩 낮출수록 티라노사우르스 나이의 역치는 줄어들고, 결국 우리는 위의 가이드처럼 티라노사우르스의 나이를 1년 단위로 세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이는 <더미의 역설> 때문이다. 더미의 역설이란 기준이 모호한 용어를 사용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역설 중 하나이다. 그 예시는 다음과 같다. 모래더미에서 모래 한 알을 제거해도 여전히 모래더미이므로, 모래알을 계속 제거한 뒤 모래 한 알만 남아도 우리는 여전히 그 모래알을 모래더미라고 불러야 한다. 이것이 더미의 역설이다. 앞선 밈에 나온 티라노사우르스 화석은 1년이 지나도 여전히 7천만 년 된 화석으로 취급하므로, 1천만 년이 더 흘러도 여전히 7천만 년으로 불려져야 하는 셈이다.


밈과는 별개로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꽤나 어린 시절부터 고민을 해 왔다. 그 계기는 대략 10년 전쯤에 읽은 <Why? 물고기> 이다. 나는 이 책에서 지구가 46억 년 되었다는 내용을 보고, '내년에는 46억 1년으로 수정해야 하려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나도 46억 년이라는 표현이 근사치라는 것쯤은 알았기에 당연히 1년 단위로 수정할 일은 없다는 건 알았지만, 몇 년이 지나야 이 <Why?> 에서는 46억 년을 47억 년으로 바꿀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나서야 나와 같은 고민을 한 사람이 이미 있고 그 고민의 이름이 더미의 역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역설의 해답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지구의 나이를 천만 년 단위로 센다든지, 백만 년 단위로 센다든지, 반올림을 한다든지가 그 예시겠지만 '왜' 그렇게 세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또렷한 답을 낼 수 없다. 십만 년일 수도, 1만 년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결국 과학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하여 지구의 나이를 1년 단위로 알아내지 않는 한 명쾌한 해답은 없을 듯 하다.

 

지구의 나이는 언제쯤 46억 년을 벗어나 천만의 자리, 백만의 자리, 나아가 일의 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 지구의 나이가 46억에서 47억으로 바뀌는,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존재할 그 순간은 분명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던 그 순간보다도 짜릿할 테지만, 아마도 그때를 살아가고 있을 지구인들은 지구의 나이가 바뀐 것도 모르지 않을까. 라는 상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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