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만에 쓰는 일기다. 그동안 딱히 단독으로 적을 만한 일은 없었던 것 같다. 판타스틱 4를 개봉하자마자 보러 갔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공리주의적인 갈등을 관객이 납득 가능한 선에서 괜찮게 풀어냈고 CG나 캐릭터 등의 전반적인 만듦새도 훌륭했다. 특히 여자로 나오는 실버 서퍼가 가장 매력적이었다. 영화를 본 뒤에는 저번 브레이브 뉴 월드를 본 뒤에 그랬듯이 새벽 3시에 맥도날드에 짱박혀서 진솔한 얘기를 했는데 내용은 생략한다.
어쨌든 오늘은 오후 2시쯤 일어났다. 12시를 넘겨서 일어나는 날은 보통 우울하다. 깨어 있는 상태와 해가 떠 있는 상태가 겹쳐 있는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역시나 오늘은 은은하게 우울했다.
번개장터에 5천원에 올려 둔 루크 케이지를 누가 4천원으로 깎아달라고 하길래 굉장히 불쾌해졌다.
사실 돈 벌려고 올린 물건은 아니지만 그 천원이 없나 싶은 마음이다. 국내에서는 구하기 힘든 물건이라 무시해도 그냥 사겠거니 싶었지만 그래도 불쌍하니 200원만 깎아줬다. 그랬더니 또 반값택배로 해달라길래 굳이굳이 반값택배 옵션을 만들었다. 그제서야 결제를 했다.
아무리 꼬와도 어쨌든 결제를 해주었으니 택배는 보내줘야겠지 않는가. 뽁뽁이로 루크 케이지를 잘 감싸준 뒤 적당한 택배 박스를 찾았다. 알맞은 크기가 없어서 재활용 상자를 뒤져 찾은 적당한 크기의 파스타 소스 상자를 재단해 박스를 만들어 담아줬다.
씻고 택배를 보내러 나갔다. 반값택배는 편의점 자체의 유통망을 이용해서 보내기 때문에 송장이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보내는 반값택배라서 신기했다. 사실 편의점에 나가는 것이 그렇게 귀찮은 일까지는 아니기 때문에 천원 정도 아끼고 반값택배를 이용해도 될 것 같지만 보내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따로 요청하려면 좀 껄끄러워지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그냥 일반택배가 나을 것 같다.
밥을 먹고 나서 심심해서 뚜또를 사러 나갔는데 시간이 시간이라 큰호박에서 귀가하는 집단을 마주쳤다. 그렇게 다음 주 과학고에 가는 모임을 위해 8시 반에 아파트 앞에 모이기로 약속을 잡고 길쭉한 놈과 아파트 단지 산책로를 돌며 진솔한 얘기를 했다.
집에 돌아와 넷이서 오천원씩을 걸고 포커를 쳤다. 그런데 이 미친 길쭉한 놈이 리바이를 3번씩 하더니 그것마저 올인으로 잃고는 튀었다. 길쭉한 놈이 박은 돈을 모두 내가 먹었기 때문에 셋이서 치는 포커는 밸런스가 붕괴되어버렸다. 어쨌든 그렇게 마무리하고 계산 결과 총 18,524원을 이 도망자에게 받아내야 하는데 꽤나 힘든 여정이 될 듯 하다.
아무래도 남들에게 공개되는 일기를 쓰다 보니 온갖 중요하고 개인적이고 남들이 궁금해할 이야기들을 말 그대로 '진솔한 얘기' 라는 단어 하나로 생략해버리게 되는 것 같다. 반대로, 내가 중학교 2학년 시절 쓰던 일기를 보면 정말 그 시절의 혼란함과 온갖 찌질하고 솔직한 내용들이 가감없이 들어가 있다.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것을 전제로 썼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는 남들에게 보여줘도 아무 문제 없는 이야기들만 적기 마련이다. 차라리 내보이고 싶은 이야기들만 쓴다는 표현이 맞겠다. 결국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공공연히 알릴 수 없는, 그 진솔한 얘기의 내용일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내보일 수 있을 정도의' 사소한 하루를 읽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감사의 차원에서라도 일기는 꾸준히 써나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