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최근에 글을 많이 쓰지 않은 이유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글은 하나의 일관된 주제로 써내려가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다. 물론 이는 글의 완성도 및 나의 만족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이렇게 글의 완성도에 집착하다보니 글을 시작하는 것이 너무 막막해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대한 대책으로 일기라는 카테고리를 신설하였다.
일기를 쓰면 온갖 자잘한 사색들과 경험들이 글 속에서 뒤섞여도 그것이 그날 있었던 이야기라는 주제 하에 하나로 묶이게 된다. 굉장히 혁신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옆 동네 이화여고 전문 블로거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블로그의 본질은 원래 일기 아니었던가. 무엇보다 일기는 뇌를 빼고 써내려갈 수도 있다. 있었던 일을 기술하면서 느낀 점 한 스푼만 첨가해주면 되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부터 일기를 써 보려고 한다.
방학답지 않게 일찍 일어났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인사이트랩 프로그램의 비공식적인 수업을 위해서이다. 어제의 수업에 이어서 결정게임과 비결정게임을 배웠다. 결정게임은 죄수의 딜레마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반면 비결정게임은 마치 가위바위보처럼 상대의 선택에 따라 나의 선택이 계속 바뀌는, 하나의 상태로 결정되지 않는 게임이다. 따라서 결정게임은 확률의 계산을 통해 최적의 선택을 알아내야 한다. 동등해 보이는 상황에서 한 명이 1/3 확률로 특정 전략을 선택하는 것을 통해 확정적인 이득을 낼 수 있다는 것이 참 흥미로웠다.
집에 돌아와보니 택배가 와 있었다. 뭐지 했더니 브릭투게더에서 시킨 부품들이었다. 그런데 부품 한 종류가 색상이 잘못 와서 문의를 남겼더니 3분만에 답장이 왔다. 다시 보내주겠다고 한다. 오배송된 흰색 바는 마땅히 사용할 데가 없으니 고민을 좀 해 봐야겠다.

4스터드짜리 투명 바를 어디에 써먹을지에 대해서는 배송이 온 뒤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요새 닌자고 미니피규어를 모으는 목표에 박차가 붙으며 시간 날 때마다 브릭링크나 번개장터 등을 들락날락거리고 있다. 오늘 보니 71821 콜의 타이탄 드래곤 로봇이 할인율이 괜찮길래 눈여겨 봤지만 사실 나는 미니피규어를 모으고 있는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71821은 그닥 좋은 제품은 아니다. 오로지 벌크를 보고 사는 제품인데 로봇같이 높이가 어느 정도 있는 모델들은 지금 전시할 공간도 없다. 물론 이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레고를 조립하는 것을 즐기는 것인지, 수집하는 것을 즐기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구매를 즐기는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지경이기에 어쩔 수 없다.
그리고는 인사이트랩과 학원 사이의 빈 시간을 인터넷을 탐험하며 낭비했다. 사 뒀던 게임이라도 해 볼까 했으나, 엄두가 안 나서 그냥 포기했다. 산소미포함을 각 잡고 플레이해보고 싶은데 꼭 50일 정도를 넘어가면 문제가 생긴다. 아무래도 공부를 해야 제대로 된 플레이가 가능할 것 같은데 게임을 공부하면서 하려니 내키지 않는다.
그렇게 잉여스러운 시간을 보내다가 학원에 갔더니 갑작스러운 분반이 있었다. 물론 공지가 있었겠지만 나는 그때 결석을 해서 말이다. 어쨌거나 늘 그랬듯이 주작으로 코칭을 무마하고, 수업은 생기부와 관련된 잡다한 이야기들을 듣느라 절반 가량의 시간을 날려서 참 좋았다.
학원이 끝나고, 부모를 공유하는 사람이 맥도날드에서 포장을 해 왔다. 감자튀김 몇 개를 주워먹다 보니 새삼 나는 맥도날드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아직 쓰지 않은 선물받았던 맥도날드 상품권이 생각났다. 한때 정말 좋은 사이였으나 지금은 눈을 마주치기도 어려운 사람이 준 것이다. 생일 축하한다며 말이다. 나름대로 관계를 회복해보자는 증표였을 것이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쉬이 쓰기 어렵다. 상품권이라는 것은 한번 쓰고 나면 사라지는 실용적인 소모품이니 말이다.
차라리 키링처럼 실용성 없는 수집품을 줬으면 달고 다니기라도 하면서 볼 때마다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선물을 줄 수 있을 정도의 사이였던 순간이 존재한다는 점이 나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
내일 아침에는 일정이 없다. 아마 게임을 좀 하며 디스코드로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느지막한 오후에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방학이라면 이런 날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