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스타 메모는 어떻게 게시되는가?

나는 하루에도 여러 번씩 수시로 인스타 메모를 올리는 편이다. 본계에 스토리나 게시물을 올리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지만, 왜인지 모르게 메모는 그렇지 않고 별 생각이 들지 않아서 생각나는 대로 올리는 편이다. 그런데 이렇게 의미심장해 보이는(실제 여부와는 상관없이) 글귀를 올리면 몇몇 사람들의 호기심을 유발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내가 오늘 메모를 올리는 과정을 서술함으로써 그 의문을 한번 해소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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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의 특성

메모가 게시되는 과정을 논하기 이전에, 어떤 메모가 내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오는지를 알아보자. 기억이 닿는 선에서 최근 나의 메모들을 발췌해 보았다.

가스라이팅 제곱

할랄 가이즈

love 남용

스몹식 미식

빅세일과 애프터세일

왜 팝송은 알아들을 수 없는데 좋은걸까

이 단편적인 예시들만 가지고 전반적인 속성을 파악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다른 사람들이 올리는 메모들을 보면 실용적이거나(ex. 2월 31일까지 연락 안돼요) 직관적인 감정을 표출하거나(ex. 요즘 너무 우울하다..) 별로 안 궁금한 명확한 내용을 게시(ex. 시험 100점 받아서 기분 좋다!!)하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하면 나의 메모는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고 뜬금없고 사회 부적응적인 면모를 보이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렇다면 나의 메모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런 뜬금없는 문구가 되는가? 위에서 뽑은 6가지의 메모들을 각각 해설하며 그 과정을 파악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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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해설

가스라이팅 제곱

지난달에 지인과 진솔한 대화를 하다가 영등포구의 모 구민분께서 나를 친구에게 가스라이팅을 시전하며 가지고 노는 파렴치한으로 여기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듣게 되었다. 물론 상당한 헛소리다. 이에 비탄을 금치 못한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메모에 '가스라이팅 누명' 을 시전했으나 너무 노골적이라는 지인의 만류에 '가스라이팅 가스라이팅'(가스라이팅을 한다고 가스라이팅을 한다는 뜻) → 가스라이팅² → 가스라이팅 제곱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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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랄 가이즈

고등학교 1학년의 마지막 시험을 대비하며 열심히 통합사회 공부를 하던 밤에, '할랄(이슬람 율법에서 허용되는 것. 여기서는 그 중 식품을 의미)' 이라는 단어를 보고 방탈출을 하러 몇 번 방문한 강남에서 본 프랜차이즈 '할랄 가이즈' 가 떠올랐다. 그렇게 할랄 가이즈에 꽂혀 메모에 게시와 함께 한동안 아무한테나 할랄 가이즈 짤을 뿌리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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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남용

나는 특정인에게 잘못을 하거나 민폐를 끼쳤거나, 고마운 일이 있을 때 때 'love 이름(ex. 만약 철수라면 love cheolsu)'이라고 하면서 넘어가려고 하는 양아치스러운 버릇이 있다. 어쨌든 그날도 평소처럼 love를 남발하고 있었는데, 너무 남발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반성하는 의미에서 올린 메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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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몹식 미식

스몹(내가 속한 단톡방 스포츠 몬스터의 줄임말)은 시험이 끝나면 다같이 쿠우쿠우나 명륜진사갈비 등을 가는 전통이 있다. 그날은 내가 이런 가성비를 추구하는 행태에 질려 미식을 좀 시도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무수한 비난과 함께 다시 생각해 보니, 우리가 무슨 미식 타령이냐는 생각이 들어 올린 메모이다. 스포츠 몬스터의 미식이란 가성비 추구라는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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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세일과 애프터세일

무신사에서 1월 15일부터 30일까지 설날 빅세일을 진행했었다. 옷 구매를 미루고 미루다가 빅세일을 약 1시간 가량 남기고서야 빠르게 살 만한 옷들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자정까지 몇 분 남기지 않은 시점에 결제를 하려고 했으나 은행의 점검 이슈로 실현되지 못했다. 체념하고 여유롭게 옷을 고른 뒤에 확인해보니 놀랍게도 애프터세일이라는 명목으로 할인이 유지되고 있었다. 어이없는 마음(이럴거면 왜 굳이 빅세일과 애프터세일로 나눈 것인가)과 나이스한 마음(자정 되자마자 할인 끝났으면 매우 억울했을 텐데 다행이네)이 동시에 들었고, 이를 담아낸 메모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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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송은 왜 알아들을 수 없는데 좋은걸까

팝송을 듣고 있던 김 모 군과 디스코드를 하다가 그가 무심결에 내뱉은 명언이다. 듣고 너무 감격을 받았다. 정말 순수한 의문이었다. 이렇게 순수한 의문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이 친구 말고 또 누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메모를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게 말이다. 팝송은 왜 알아들을 수 없는데 좋은걸까? 혹시 아는 사람 있다면 답변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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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가 게시되는 과정

상기된 메모 해설을 통해 메모에 대한 이해도가 어느 정도 생겼다고 가정하고, 메모가 올라오는 과정을 일반화해서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1. 소재의 수집. 우선은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수많은 단상(斷想)이나 주변의 재미있는 것들 중 메모스러운 것들을 수집한다. 앞서 해설한 메모들에서 예시를 찾자면 전자의 예시로는 'love 남용', 후자의 예시로는 '할랄 가이즈' 가 있겠다. 이것들을 다듬으면 훌륭한 메모가 된다.
2. 반사회적인 내용 다듬기. 예를 들어 나 빼고 다 시험 망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자. 이를 그대로 메모에 올렸다간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 자명하므로 수정이 필요하다. 나 빼고 다 시험이 망한다는 것은 나만 예외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나 빼고 다 시험 망하면 좋겠다' → '예외 선호' 와 같은 식으로 바꿀 수 있다.
3. 의미심장하게 만들기. 이 과정은 선택이다. 메모에 의미삼장함이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첨가된다면 수많은 시민들의 궁금증을 유발시킬 수 있으므로 유용하다. 예를 들어 낮에 잠을 너무 많이 자서 밤에 잠이 오지 않는 상황이라고 하자. 단순히 '불면증' 이라고 올릴 수도 있지만, 수면 시간이 이동되었다는 의미에서 '재배치 후회' 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간단한 디테일이 의미심장함을 만든다.

내가 올리는 대부분의 메모는 이런 식이다. 이런 절차를 거치고 나면 욕설이나 너무 저속한 표현처럼 반사회적인 내용은 사라지고, 의미심장함은 첨가된 바람직한 메모가 된다. 의미심장한 척 하지만 사실 중요한 내용은 거의 없으므로 큰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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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하지만 나는 내가 올리는 메모에 대한 호기심은 적극 환영한다. 친절한 해설을 제공하고 있으니 만약 메모가 가지고 있는 의도에 궁금증이 생긴다면 DM 부탁한다. 내가 올리는 모든 메모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의미심장하지는 않을 수 있어도 말이다. 모든 메모엔 의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