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28일을 마지막으로 백준이 서비스 종료를 한다.

https://www.acmicpc.net/board/view/165799
'백준' 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백준은 최백준 씨가 2010년에 개설한, 알고리즘 문제를 풀고 채점할 수 있는 사이트이자, 알고리즘 문제 DB이다. 평소 이 분야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알고리즘 문제' 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를 것이다. 아래에 내용을 이해하기 쉬운(풀기가 쉽다는 것은 아니다) 정석적인 알고리즘 문제 중 하나를 가져왔다.

10844번: 쉬운 계단 수
문제
45656이란 수를 보자.
이 수는 인접한 모든 자리의 차이가 1이다. 이런 수를 계단 수라고 한다.
N이 주어질 때, 길이가 N인 계단 수가 총 몇 개 있는지 구해보자. 0으로 시작하는 수는 계단수가 아니다.
입력
첫째 줄에 N이 주어진다. N은 1보다 크거나 같고, 100보다 작거나 같은 자연수이다.
출력
첫째 줄에 정답을 1,000,000,000으로 나눈 나머지를 출력한다.
이처럼 '알고리즘 문제' 를 푼다는 것은 단순히 정답이 정해진 문제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코드를 작성하는 것이다. 알고리즘의 특성상 하나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코드는 여러 가지가 있기에 모범 답안과의 일치 여부만으로는 맞고 틀림을 판단할 수 없고, 작성된 코드가 문제에서 제시된 조건에 부합하는 모든 입력에 대해 올바르게 출력되어야 맞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웹에서 테스트 케이스들을 사용자가 작성한 코드에 넣어서 출력이 올바른지를 확인하는 채점의 과정이 필요하다.
백준은 사용자에게 수많은 문제를 제공하는 동시에 이 '채점' 의 과정을 수행해주는 역할을 했다. 세계 최고 수준(33000개 이상)의 문제 수, 잘 정리된 여러 대회의 기출 문제들 등의 장점을 바탕으로 ICPC와 한국정보올림피아드 같은 대회를 준비하거나 알고리즘을 공부하는 개발자들에게는 십수 년간 큰 힘이 되어 왔다.
게다가 한국인 입장에서는 해외 사이트나 국내의 타 사이트에 비해 월등히 깔끔한 UI와 다양한 편의 기능(질문 게시판, 문제집, solved.ac와의 연동 등...), 적절하게 배합된 한국 인터넷 감성까지 감안한다면, 백준을 능가하는 온라인 저지 사이트는 없다고 보는 편이 맞았다.
그런데 그런 백준이 서비스 종료를 한다.
내가 백준을 처음 접한 계기에 대해서 말하자면, 사실 내가 처음으로 접했던 온라인 저지 서비스는 정보올림피아드 대비를 중점으로 하는 사이트 정올이었다. 그 시기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학원에서 파이썬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며 같이 시작했으니 아마 2020년 전후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나 2022년에, 나는 파이썬 다음으로 C언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파이썬보다 훨씬 엄격한 C를 배울 때는 문법을 익히기 위해 풀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백준을 만났다.
처음 이야기가 나오니 갑자기 궁금해져 나의 제출 기록을 한번 뒤져본 결과, 내가 처음으로 풀었던 문제는 역시 2557번(Hello World)이었다. 2022년 5월 8일 20시 46분 10초. 나의 첫 제출이다. 아쉽게도 세미콜론을 빼먹어 컴파일 에러가 떴지만 말이다.

그 후로는 문제풀이에 재미가 들렸다. 그때는 솔브닥의 난이도 표시 기능도 몰랐고, 시간복잡도가 뭔지도 몰랐고, 아는 알고리즘도 하나 없었지만, 초록색 맞았습니다!! 글자가 띄워지는 것을 보는 것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물론 난이도 표시와 알고리즘 관련 지식의 부재로 인해 무턱대고 어려운 문제에 도전했다가 좌절을 맛본 적도 있다. 그래서인지 가끔 그때부터, 혹은 그때보다 좀 더 어렸던 초등학생 시절부터 체계적으로 백준 문제풀이를 했더라면 지금보다는 더 성장해 있었겠다는 아쉬움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날것의 시절이 결코 나쁘지는 않았다.
중 3이 되고서부터는 학원에서 수강할 만한 거의 모든 커리큘럼(마인크래프트 파이썬, 파이썬 심화, 파이게임, 유니티, C, 아두이노...)을 전부 들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선생님의 재량 하에 정보올림피아드 수상을 목표로 알고리즘을 배우기 시작했다. 대략 반년 정도의 시간 동안 기본적인 자료구조와 그래프 이론, 재귀 등등 기초적인 알고리즘을 배우는 것이 참 흥미로웠다. 나의 코딩 재능의 한계를 느낀 것도 이때쯤이다. 그렇게 어찌저찌 처음이자 마지막 정보올림피아드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학원을 그만둔 뒤에도 나의 백준 생활은 이어졌다. 학원에 다닐 때처럼 새로운 알고리즘 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solved.ac(백준과 연동되어 문제 난이도 표시 등의 다양한 편의 기능을 제공하던 사이트)에서 티어를 올리고 스트릭을 유지하는 재미에 빠졌다. 스트릭은 깃허브의 잔디와 비슷한 기능인데, 매일매일 연속해서 문제를 푼 기간을 표시해 주었다. 전성기에 찍은 내 최장 기록은 66일이다.

날짜 변경 기준이 오전 12시가 아닌 오전 6시였던 관계로, 방학에 친구들과 마인크래프트 서버 개발을 하다가 새벽 3시가 다 되어 스트릭 유지를 위해 부랴부랴 쉬운 문제를 찾아 풀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백준이 나와의 모든 추억을 안은 채로 서비스 종료를 한다.
실수로 스트릭을 깨트린 뒤에도, 전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백준을 풀었다. 그렇게 또 몇 달이 지나 슬슬 고등학교 입학 준비를 할 때가 되어 백준을 잠시 접게 되었다. 대학 입시가 끝나면 다시 백준을 본격적으로 재개할 계획이었다. 플래티넘을 찍어 난이도 기여도 열심히 하고, 원래 이 블로그의 개설 목적이었던 백준 문제풀이도 성실하게 올릴 생각이었다.
그렇게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다 보니 컴퓨터부 부장을 맡게 되었다. 작년에는 동아리 운영도 벅차 동아리에 백준을 도입하지 않았지만, 올해는 전년도에 비해 똘똘한 신입생들이 꽤나 많이 입부했다. 여러모로 여유가 생겨 올해는 동아리 차원에서 신입생들에게 백준을 가르치며 본격적으로 알고리즘에 입문시킬 생각이었다.
그런데 백준이 나의 모든 계획을 어그러트리고 서비스 종료를 한다.
서비스 종료의 이유는 백준 측에서 의도적인 침묵을 지키고 있기에 단언할 수 없으나, 여러 의견을 종합하여 본다면 가장 큰 이유는 2022년 11월 처음 등장한 ChatGPT를 필두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LLM들이다. 백준의 정확한 수익구조는 알 수 없지만 강의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했을 텐데, AI가 문제를 대신 풀어줄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하고 AI가 알고리즘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의 역할까지 해 줄 수 있으니, 백준 입장에서는 큰 타격이 있었을 것이다.
이후 며칠이 지나 스크래핑 자제 공지가 올라온 것을 보면, 역시 AI의 도움을 받아 무분별하게 웹사이트를 긁어와서 학습하는 세력들도 꽤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이트에 지속적으로 큰 무리가 갔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추후에 백준 측에서 정확한 서비스 종료 사유를 밝히고 나서 보면 의외로 AI와는 큰 상관없는 일일 수도 있다. 실수로 서버에 커피를 쏟았다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AI로 잃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사람의 온기, 평화로운 인터넷, 소박하지만 사람의 정성이 들어간 창작물들까지 말이다. 인공지능이라는 막대한 권능이 자격 없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능력을 부여했다고 느껴진다.
이번 서비스 종료를 계기로 많은 생각을 했다.
앞서 언급했던 백준의 여러 장점들을 가지고 있는 완벽한 대체제, 즉 백준의 정신적 계승자가 등장하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요즈음의 세련되고 감각적인 바이브 코딩 작업물들을 보면, 코딩의 극단적인 수단화, 그리고 그 과정의 즐거움에 대한 철저한 배제가 진행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십수년을 결과주의자로 살아왔으면서도, 내가 아끼고 좋아하던 것들이 효율이라는 미명 하에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보며 아무렇지 않아 하기는 힘든 것 같다.
그래도 작별 인사는 해야겠지.
Good Bye, BO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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