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사색

음악 추천에 관하여

시계태엽 2025. 5. 6. 15:00

나는 음악을 듣는 것을 취미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다. 남들이 일을 하며 음악을 들을 때, 나는 음악을 듣기 위해 일을 한다. 마치 메이플 시럽을 먹기 위해 팬케이크를 먹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나처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보통 다수에 의해 향유되지는 않으나 음악성 자체는 좋은, 말하자면 숨은 명곡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필연적으로 남들에게 자신이 듣는 음악을 추천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나 나는 결코 음악을 추천받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노래 추구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한 @seoulhousemusic 의 짤. 정말 적절했다.

그렇다. 나는 결코 노래를 추천받지 않는다. 왜일까?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남들이 추천해준 노래를 듣는 것이 싫다. 내 주변에 있는 음악 추천 전문가들의 음악 취향은 나와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남들이 좋다고 하는 노래를 기피하게 되었다.

 

나는 새로운 음악을 내 플레이리스트에 넣는 것에 상당히 보수적인데,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오직 자연스럽게 나에게 들린 노래만 들어올 수 있다. 유튜브 뮤직의 자동재생을 통해 나에게 꽂힌 음악이 그런 경우에 속한다. 가끔은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 릴스에서 들은 음악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찾아 듣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어느 경우건 자연스럽게 나의 귀에 들려야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pY2s5Lf8JA0

Lamp - 明日になれば僕は(내일이 되면 나는). 우연히 릴스에서 들은 뒤 그때부터 꽂혀서 계속 듣고 있다. 그러나 내가 그렇듯이 여러분들이 들으리라는 기대는 크게 하지 않는다.

이런 내가 음악을 추천받아서 들을 리는 만무하다. 물론 그 추천받은 음악이 나의 취향에 적합할 수도 있다. 만약 그런 경우에는 그 음악은 단지 내가 먼저 발견하기 전에 추천받았다는 이유로 영영 듣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니 그냥 나의 고집 같기도 하다.


선민의식 혹은 홍대병

사실 나는 나의 음악 취향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일단 거의 대부분의 아이돌 노래를 듣지 않고, 인디스럽고, 잔잔하고, 감성적인 그런 노래 위주로 듣는다. 하지만 인디 음악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음악 중 대다수가 인디 음악이긴 하지만, '인디' 가 좋아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내가 앨범 전체를 듣는 몇 안 되는 가수 중 하나인 브로콜리너마저의 경우에도 그냥 내가 좋아서 듣는다. 인디라서 좋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대중적인 노래도 그렇게 기피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의 취향에 딱 맞는 노래가 흔치 않을 뿐이다. Yes or No라든가, 고민중독이라든가...

 

어쨌거나 뭔가 나의 음악 취향은 우월하고 타인의 그것은 그에 비해 떨어진다는 일종의 선민의식이 은연 중에 있는 것 같다. 사실 나의 안 좋은 점이기도 한데, 이러한 편견이 나의 고집을 강화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듯 싶다.


의문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나만 음악 추천을 안 받는 걸까? 나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정말로 남들이 추천해준 노래들을 하나하나 다 찾아서 듣는 걸까? 나는 잘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나에게 손수 음악을 추천해준 많은 음악 추천 전문가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그래도 여전히 음악 추천을 받을 생각은 없다.

 

내가 음악 추천을 받지 않듯이, 나는 음악 추천을 하지도 않는다. 각자에게는 각자에게 맞는 음악이 있을 것이고, 그걸 모두가 들을 필요는 없다. 내가 그 진가를 알아주면 그만인 것이다.